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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무관하게 많은 이들이 가고 온다. 이달 초에는 작은고모부가 가셨다. 부친이 독자여서 고모부들과 유년기부터 각별했다. 이 고모부는 1970년대 후반 중동 건설 붐이 일 때 노동자로 그곳에 파견됐다. 그곳에 가는 노동자로 선발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뒷줄을 대기도 했다. 그만큼 한 번 다녀오면 만만치 않은 목돈을 쥘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이분이 중동에 가서 사막의 열기 속에 땀을 흘리고 있을 때 모친이 돌아가셨다. 이 땅의 가족들은 아들에게 차마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들어오는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이미 어머니는 땅속에 들어갈 텐데 연락을 한들 미어지는 가슴을 사막에서 어찌 견딜 수 있었을까.

작은고모부는 그을린 얼굴로 돌아와 맨 먼저 어머니를 뵈어야 했지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했다. 힘든 시간을 보낸 후 친지들이 모여 환영하는 자리에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게 됐다. 제법 시간이 흘러 슬픔이 진정된 줄 알았는데 그분은 자신의 순서에서 ‘불효자는 웁니다’를 불렀고 결국 노래를 마저 끝내지 못하고 통곡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도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1938년 발표된 노래다.

4년 앞서 나온 ‘타향살이’는 내 할머니가 좋아한 노래였다. 할머니도 떠난 지 오래됐지만 이 노래가 들릴 때마다 그네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할머니도 자식들을 위해 멀리 떠날 때 어린 나에게 이 노래 가사를 주먹만 하게 써 달라고 청해 깊이 간직하고 갔다. 손자가 생각날 때마다 이 노래를 불렀다고 후일 말했다. 타향살이 몇 해든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깊어가는 계절에 흔들리는 억새들을 보면서 이들을 떠올렸다. 1936년 발표된 고복수의 ‘짝사랑’은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한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으악새를 두고 말이 많았다. 억새의 방언이 으악새여서 새가 아닌 풀이 맞다는 견해가 그럴듯하지만, 왜가리의 다른 이름도 으악새여서 새가 맞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풀이건 새이건 으악새는 이미 가을 새가 된 지 오래다. 억새는 흔들리면서 울고 왜가리는 하늘을 보고 운다. 으악새가 울어 가을인지, 저 새가 울어 가을은 깊어가는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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