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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디지털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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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29 00:53:34 수정 : 2016-09-29 00: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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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고자 하는 욕망이 컸던 나머지 아마도 영원히 잊히기 어렵게 된 인물이 있다. 스페인 변호사 곤살레스다. 2009년 구글 검색 도중에 11년 전 발생한 자신의 파산을 다룬 기사가 온라인 세상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알게 된 게 자충수를 불렀다.

그는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에 ‘지워 달라’고 호소했다. 왜? 변호사 개업 활동에 파산 기사가 나쁘게 작용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보호원은 고민 끝에 구글에 ‘기사 링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여기까지는 순풍에 돛 단 배였다. 하지만 구글은 보호원의 조치가 표현의 자유에 반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유럽사법재판소에 판단을 넘겼다. 조용히 잊히기를 소망한 곤살레스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눈사태였다. ‘곤살레스 파산’ 기록은 결국 이른바 ‘잊혀질 권리’를 둘러싼 세계적 논란의 화두가 되고 말았다.

유럽사법재판소는 보호원의 손을 들어줬다. 곤살레스도 승자가 됐다. 하지만 파산 전력을 모를 사람이 없게 됐으니 실익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기사 링크를 중단한 것은 스페인 구글뿐이다. 미국 구글을 통해서는 지금도 여전히 기록을 검색할 수 있다. 인터넷 전문가 J D 라시카의 경구를 되새기게 된다. “인터넷은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The Net Never Forgets)는.

‘디지털 장의사’가 국내 성업 중이라고 한다. ‘디지털 세탁소’로도 불리는 이 직업은 개인이 원하지 않는 인터넷 기록이나 죽은 사람의 인터넷 흔적을 정리해주는 온라인기록삭제업이다. 국내 성업은 보복성 포르노·몰카 범죄가 만연한 세태와 무관치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3월 ‘5년 내 부상할 신직업’으로 선정한 것을 보면 직업 전망도 제법 밝은 모양이다.

몰카 범죄 기록 따위라면 삭제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은 매우 쉽다. 깔끔히 지우면 된다. 장의사 활동 또한 격려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삭제 대상이 곤살레스 유형의 기록이라면 뭐가 정답인지 분간이 쉽지 않다.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거리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유럽은 ‘잊혀질 권리’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대처 방법도 상이하다.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집단지성이 필요한 국면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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