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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더 늦기전에… 유전자 기록 남기는 이산가족들

입력 : 2016-08-24 19:16:16 수정 : 2016-08-25 08: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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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유전자 보관사업 1만4000명 참여 “아 하시고 키트를 물어주세요.”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행정자치부 소속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실. 다우진유전자연구소 관계자들이 백구섭(77) 위원장의 구강 세포를 채취하고 있었다. 면봉처럼 생긴 키트의 윗부분을 몇 초 동안 입 안에 넣고 키트에 침을 잔뜩 묻히면 끝이다.


서울 종로구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다우진유전자연구소 황춘홍 대표가 이산가족 유전자 검사 및 보관을 위해 백구섭 위원장(왼쪽)의 구강 세포를 채취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이어 모발과 혈액 채취. 핀셋으로 모근이 붙어 있는 여섯 가닥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뽑았고, 사혈침으로 혈액을 채취했다. ‘통일부 이산가족 유전자 검사 및 보관 신청서’를 자필로 쓰는 시간을 제외하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데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9월15일)이 3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올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6만 이산가족 생존자들은 애가 탄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사람들의 고령화로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올해 처음으로 생존자 수를 앞질러 마음도 착잡한 상황이다. 백 위원장이 더 늦기 전에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보관하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북5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이북5도민 850만명을 관할하는 백 위원장(차관급)의 고향은 평안북도 태천군이다. 7남매 중 막내인 그는 1944년 여섯째 형과 함께 부모 손을 잡고 강원도로 내려왔다. 광산업을 하던 아버지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을 보고 “남쪽으로 가야 산다”며 형제만 데리고 넘어온 것. “그렇게 형제자매와 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하는 백 위원장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대부분 이산가족이 그렇듯 그도 5남매의 생사조차 모른다. 백 위원장은 “상봉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청했지만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어 북녘에 있을 가족을 만나진 못했다”며 “어떻게든 오래 살아서 5남매 생사 여부와 조카들을 확인하고 싶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24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백 위원장처럼 올해 유전자 검사 및 보관에 응한 이산가족은 2000명 정도다. 이달부터 통일부가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이산가족 유전자 검사 및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에 착수한 데 따른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행되는 이 사업은 201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 매년 입찰을 통해 진행되는데 ‘다우진유전자연구소’가 3년째 맡고 있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14년과 2015년 각각 1211명, 1만274명의 이산가족이 유전자 검사를 받았고 올해는 1만명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검사 결과는 DB화하며, 유전자 시료는 영하 80도의 초저온냉동고에 보관된다. 최소 20년 이상, 거의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소 측 설명이다.

이산가족의 유전자 검사, 보관 작업은 이들의 급격한 고령화를 감안할 때 한시가 급한 사안이다.

통일부가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에게 제출한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이산가족 등록 현황’에 따르면 1988년∼2016년 6월 말 상봉 신청자 13만850명의 절반이 넘는 6만7180명(51.3%)이 눈을 감았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사망자가 생존자를 추월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며, 이런 상황은 점차 가속화할 전망이다. 생존자 6만3670명 중 3만8424명(전체 60.4%)이 80∼90대 고령자이기 때문이다.

다우진유전자연구소 황춘홍 대표는 “분단이 너무 오래돼 기억에만 의존해 가족을 찾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산가족 당사자인 1세대가) 돌아가신 뒤 혈연관계를 확인하거나 증명해야 하는 경우를 상정하면, 유전자만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이산가족과 관계자도 “유전자 검사 및 보관은 통일 대비 남북 가족의 재결합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1세대와 2·3세대 간의 인식 차이가 있다”면서 “1세대를 상대로는 ‘왜 유전자를 검사하고 보관해야 하는지’를, 2·3세대에게는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체성을 제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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